또치네의 바닷속 나들이 - 그 첫번째 이야기 [수중세계 2010년 1/2월호 기고]

2010. 1. 20. 10:37파란 세상/인도네시아


색이 참 희귀하고 아름다워 마치,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 같다고 할까? (마나도 부나켄)



누구에게나 취미는 있다.

그리고 그 취미를 맘껏 즐기고 싶은 생각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마음 놓고 ‘취미활동’에 빠지기란 -물론 어떤 취미를 즐기고 있느냐에 따라 상황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시간적인 측면으로나 비용적인 측면으로나 그리 녹녹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하필(?) 그 취미가 스쿠버다이빙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가 3면이 바다라고 하지만, 주로 생활하는 곳이 바다에서 가깝지 않다면 스쿠버다이빙을 위해 바다로 한번 씩 움직이는 것도 크게 마음을 먹어야 할 때가 많을 것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될 때 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다이빙을 다니다보니, 여기저기서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 수 있으니 참 좋겠다.’는 부러움과 함께 ‘그렇게 자주 휴가내도 책상 빼라고 안 해?’등의 걱정스런 목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러나 보통 1년에 한두 번 해외로 다이빙을 가더라도 주말을 끼고 가니 휴가기간은 많이 내도 2~3일이며, 그나마 국내바다를 갈 때는 금요일 밤부터 주말을 이용해 다녀와서 휴가를 따로 쓰지는 않으니 절대 ‘그렇게 자주’ 휴가를 내지는 않는다~ㅋ

나름 그저 평범한 직장인인지라, 결코 다른 사람들 보다 상황이 많이 유리한 것은 없다. 다만 사람마다 우선순위가 다른데, 우리 부부 우선순위에는 다이빙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보다 자주 다이빙을 다닐 수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직장에서 복장이 자유로운 덕분에 결혼 13년차인 우리 부부의 결혼 후 정장 구입비는 남들의 1~2년 치도 안 될 것이며, 화장도 안하니 화장품이라고는 3년째 반도 못 쓰고 있는 스킨로션 하나가 전부이고, 작년 말에는 ‘40대 부부가 타기엔 좀 작지 않느냐?’라는 걱정들을 뒤로한 채, 10년 넘게 타던 소형차를 대신할 새 차로 경차를 구입해 차량유지비도 줄이는 등, 다른 곳에 쓸 비용을 과감히 줄여 그 대부분을 다이빙에 투자(?)하니 가능한 이야기다.

어찌되었거나, 자주 다니는 것으로 소문이 났는지, “다녀온 스쿠버다이빙 여행 이야기를 다이버의 관점으로 재미있게 써보자.”는 제의를 지난해 말 수중세계 애독자 클럽인 가이아클럽 송년회에서 받았다. 제의를 받고, ‘년 초에라도 한번 다녀올까?’하는 생각도 잠깐 해 보았지만, 다음 달 대학 후배들과 여행도 계획 중인데 그 사이에 또 다녀오는 것은 많이 무리여서, 협의 끝에 ‘다녀온 곳 중 가장 좋았던 곳’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어디를 할까?’, 남편과 함께 고르며 다이빙 추억을 뒤돌아보다가 재작년 가을에 다녀온, 평소에는 쉽게 가기 힘든 ‘마나도 스쿠버다이빙 여행’을 택했다. 물론, 그곳이 누구나 쉽게 가기는 어려운 곳이라는 단점은 있지만, 우리처럼 마음만 먹으면 못 갈 것도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선택했다.

그리고 ‘또치네의 바닷속 나들이’라는 이름으로 스쿠버다이빙 여행기의 비정기적인 연재를 시작 한다.


스쿠버다이빙 여행은 우리 부부의 삶에 활력을 주는 요인 중 하나다. (릴로안)

큰 부채산호를 배경으로 한 컷 담아보려 했는데, 뭐가 그리 급한지 먼저 가버린 남편.(부나켄)



인도네시아의 마나도(Manado)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다이빙 포인트다. 생각 같아선 유럽인들처럼 한 달 정도 머물며 마나도에서 좋다는 곳을 모두 돌며 다이빙을 해보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날짜에 제한이 있다 보니, 먹다이빙(muck diving)으로 유명한 렘베(Lembe)와 수려한 물속 환경과 시야로 유명한 해양공원 부나켄(Bunaken)만 다녀왔다.

2008년 봄, 마나도를 계획할 때만 해도 다이빙을 즐겨하지 않던 남편한테, ‘여름휴가로 다이빙을 가면 어떨까?’ 했더니 의외로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그 틈을 타서 재빠르게 다이빙여행으로 결정하고 딴 생각 못하게 아예 날짜까지 잡아버렸다. 남편 회사는 여름휴가를 3박4일밖에 못 쓰는데, 마침 2008년 10월초 금요일이 공휴일이라 그날을 기점으로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휴가를 쓰고, 앞뒤 주말을 붙여 9박 10일이라는 긴 시간을 빼냈고, 어렵게 마련했으니, 가깝고 흔한 곳 보다는 평소 가기 힘든 곳을 가자는 생각으로 선택한 곳이 마나도였다.

그러나 그곳은 정녕 쉽게 갈 수가 없는 곳인지, 우리나라에서 마나도로 가는 가장 보편적 방법인 싱가포르 경유 항공권은 서너 달 전부터 날짜를 정해 알아봤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원하는 일정의 예약은 끝난 상태였고, 렘베나 부나켄 리조트들도 마음에 드는 곳은 대부분 예약이 끝나 있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어 여기저기를 더 알아본 결과, 에어아시아(AirAsia)라는 저가 항공사가 취항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경유지가 싱가포르는 아니지만, 쿠알라룸프에서 마나도까지 편도 4시간 거리를 가는 항공권을 왕복으로 구입하더라도 십 여 만원이면 갈 수 있다는 고마움에 덜컥 예약부터 했다. 단지, 저가항공이라 중량이 15kg으로 제한되고, 담요나 기내식도 없으며, 자리배정도 선착순으로 앉고 싶은 자리에 앉아야 한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마나도에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든 것을 감수할 수 있었다. 그 사이 국제전화와 이메일로 어렵사리 렘베와 부나켄의 다이빙리조트 예약도 성공했고, 싱가포르에서 일하고 있는 민규도 합류하기로 했다.

드디어 출발하는 날, 우리는 쿠알라룸프의 저가항공사 전용 공항(LCCT, 메인공항과는 한참 떨어져있으니 사전 확인이 필요하다.)에서 새벽에 출발하는 에어아시아를 타고 마나도 공항에 무사히 도착을 했으며, 마나도 공항에서 차를 타고 항구로 가서 다시 배를 타고 들어가서 렘베의 리조트에 짐을 풀고 바로 오후부터 렘베 바다의 탐험을 시작했다.


마나도에 착륙하기 직전, 아래에 마나도 본섬이 보인다.


렘베에서 우리가 묵었던 리조트

방에서는 발코니를 통해 바다가 보인다

선착장에서 다이버를 기다리고 있는 배들



수중사진을 촬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찾아가는 꿈을 꾼다는 렘베답게 체크다이빙부터 씬뱅이가 우릴 반겼고, 그 외에도 어류도감에서나 봤을만한 물고기들이 줄줄이~ 마치 잘 꾸며진 수족관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처럼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게다가 렘베는 먹다이빙을 하는 곳이라 시야가 거의 안 나올 거라는 예상을 깨고 시야가 약 15~20미터 정도로 생각보다 꽤 괜찮았다.

그 이후 다이빙도 쭈욱~ 모래 속의 숨은 그림들인 희귀한 물고기를 구경하느라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게다가 가이드의 ‘보고 싶은 거 있으면 이야기 해, 모두 다 찾아 줄께~’라는 말에 더 신난 우리는 매번 다이빙 전에 도감을 뒤져가며 두어 개씩 이야기를 했고, 가이드는 바다 속에 들어간 지 5분도 안돼서 우리가 이야기 한 것들을 하나씩 찾아주었다.


회초리 산호 위에 살던 고비 (렘베)

머리만 배꼼이 내밀고 청소 서비스를 받는 중 (렘베)



다음날 오후엔 리조트 매니저가 손님들한테 브리핑 할 때 마다 열정적으로 이야기 했던 ‘만다린 사랑(?) 쇼’도 미안한 마음으로 엿봤다~ㅋㅋ  그리고 렘베에서의 마지막 다이빙은 ‘피그미’ 다이빙이었는데, 보통 20미터 내외에 있던 피그미가 15미터도 안 되는 곳에 있어서 감압 걱정 덜하고 찍을 수 있었고, 피그미를 본 다음에도 계속해서 전기조개를 비롯한 희귀한 물고기들이 우리의 마음을 잡았다.


리조트 매니저가 말한 ‘만다린 사랑 쇼’, 얘들아 엿봐서 미안~ ^^ (렘베)

운 좋게 찍은 산란 장면 (렘베)

수심 15미터에 있던 피그미해마(렘베)

두 마리가 사이좋게 나란히 다니던 씬뱅이 (렘베, photo by 또치남편)

첫날 민규가 거북이를 보고 싶다고 말한 덕분에, 거북이만 보면 가이드가 우릴 불렀다.(부나켄)



그렇게 아쉬운 렘베를 뒤로하고, 부나켄 다이빙을 위해 다시 마나도 시내로 들어갔다. 3~4달 전부터 알아봤지만, 이미 예약이 끝난 상태였다. 이리저리 국제전화를 해본 결과 간신히 렘베섬에서의 3일은 예약을 했지만, 부나켄 섬 안의 리조트들은 풀북이라 어쩔 수 없이 마나도 시내 호텔에 머물면서 아침마다 데이트립을 나가는 것으로 힘겹게 예약을 할 수 있었다. 오전에 렘베섬을 출발했지만, 예약했던 마나도 시내의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고나니 이미 오후가 되어 버려서, 그날은 어쩔 수 없이 호텔 내부에 있는 다이브 숍에서 다음날 다이빙 예약만 확인하고 휴식을 했다. 물론 저녁에는 걸어서 간단하게 시내구경도 했고~

다음날 아침 일찍 호텔근처 선착장으로 나가 부나켄에서 데이트립 다이빙을 맡아줄 마스터를 만나 보트를 타고 출발, 30여 분만에 부나켄 수중세계에 도착했다. 첫 입수부터 큰 가오리 한마리가 우리를 반겼던, 부나켄 바다는 렘베 바다와 많이 달랐다. 렘베는 거뭇거뭇한 모래밭 곳곳에서 크고 작은 생물을 구경하는 재미였다면, 부나켄은 시야가 뻥 터진 아름다운 정원을 거니는 느낌이랄까?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부나켄의 수중시야는 훌륭했다. 바다의 색깔도 예뻤고, 형형색색의 산호와 각종 물고기, 어느 것 하나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 들이 넘쳐났다.

부나켄은 광각 뿐 아니라 접사거리도 충분해서, 수중사진을 촬영하는 우리 부부에게는 심심할 틈이 거의 없는 최상의 포인트였다. 시원하게 뻥 뚫린 시야와 아기자기함이 공존하는 곳으로, 굳이 수중사진을 촬영하는 다이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바다환경이다. 그렇게 각양각색의 물고기와 해면을 구경하며, 거북이와 가오리들이 함께하는 아름다운 수중정원에서 노닐다보니 부나켄에서의 3일도 순식간에 지나버렸다.

어느 곳에서 다이빙을 하더라도 항상, 마지막 다이빙의 안전정지 시간은 평소보다 길었는데, 그건 아마도 아쉬움 때문이리라. 이번 투어의 마지막 다이빙에서도 어김없이, 서로 안 나가려고 눈치를 보며 끝까지 버티다 배로 올라왔고, 숙소로 돌아오는 보트위에서 마나도의 모습들을 하나라도 더 기억하려고 마나도의 바다와 풍경들을 더 꼼꼼히 바라보고 느끼며 항구에 도착했으며, 일정이 길건 짧건 상관없이 찾아오는 아쉬움과 함께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래는 ‘숨은그림 찾기’ 같은 사진들
그 중 몇몇은 살짝 잡아서 모래를 떨어주고픈 충동이 느껴지기도 했다~ ㅋㅋㅋ (렘베)










마치 꿈을 꾼 듯 다녀온 마나도 다이빙여행은, 머무는 동안 좋았던 만큼 돌아올 때 무척 아쉽기는 했지만 수확도 많았다. 10년을 설득한 끝에 간신히 다이빙을 시작하고 그 이후에도 다이빙을 가자고 하면, 정말 억지로 끌려(?) 다니던 남편이 마나도를 다녀온 후부터 다이빙에 재미를 들인 것이다.

분명 마나도 이전에는 ‘어떻게 하면 다이빙을 안 할 수 있을까?’ 궁리하며 빠지려했고, 어쩌다 다이빙 투어를 같이 가게 되더라도 남들이 하루에 2~3번씩 다이빙 할 때 “뭐 하러 무리를 해, 즐기며 하면 되는 거지~”라며, 리브어보드 다이빙을 가서도 ‘하루 한 번 다이빙!’을 외치던 남편이었는데......

이제는 기회만 있으면 다이빙 여행에 따라가려고 하는 것은 물론, 먼저 가자고도 하며, 가서는 한 번이라도 더 다이빙을 하려고 하고, 대학 동아리 후배들과 함께하는 국내 다이빙 여행에도 선뜻 따라 나서니 말이다. 어쨌거나 그때 이후로, 진정으로 다이빙을 같이 할 든든하고 큰 조력자 겸 동지를 얻게 된 거니, 마나도를 다녀와서 얻은 수확이 크다고 할 밖에~ ^^


아네모네 가족들 (부나켄)

호시탐탐 다이빙 갈 기회를 노리는 것 자체가 우리 부부의 큰 즐거움이다.(제주도)





또치(배현숙)    또치남편(좌용)

또치(배현숙)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화여대 88학번으로 재학 중 스쿠버다이빙 동아리 활동으로 다이빙에 입문했다.
2005년 강사가 되었고, 수중세계 애독자클럽인 가이아클럽에서 활동하고 있다.

또치남편(좌용)
'주)환경과생명’에 근무하고 있다.
또치와 결혼 후, 또치의 꼬임으로 2002년에 다이빙을 시작했으나,
이제는 또치를 꼬셔서 다이빙을 다니고, 가이아클럽에서도 같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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